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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남편이 밉다. 꽥꽥대고 소리 지른 지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도 밉다. 그래서 오늘은 남편이 싫어하는 미역국을 끓인다. 나의 소심한 복수이자 반항이다.
미역국의 준비물은 구워먹고 남은 소고기 조금, 불린 미역, 조미료이다. 조미료 없이 갖가지 재료만 가지고도 맛있는 육수를 낼 수 있겠지만, 현대인 중의 현대인인 나는 그냥 조미료를 쓰기로 했다. 어차피 여러 가지 재료로 육수를 내도 결국 찾고 하자는 것은 MSG니까.
어쨌든 미역은 물에 불리고 소고기는 찬물에 조미료와 함께 넣어 팔팔 끓인다. 미역을 볶을 때 소고기도 같이 넣고 볶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디서 보니 고기 육수를 낼 때는 찬물부터 시작해서 끓이고 육수를 내야 고깃기름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어차피 고기의 쫄깃한 식감이 필요한 국은 아니니, 찬물부터 시작해 팔팔 끓여 고기맛을 내본다.
고기 삶는 물은 팔팔 끓기 시작한 후로 10~15분 정도 더 끓여서 진한 고기국을 낸다.
고깃국을 끓이는 동안 불린 미역을 칼로 종종 썰어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흐르는 물에 미역을 깨끗이 씻긴 뒤, 채반에 받쳐서 물 없이 미역을 2분 정도 치대 준다. 어디서 보니 미역을 치대면서 나오는 미끌한 진액이 국을 더 진하게 해 준다고 해서 한번 해본 이후로 쭉 미역국을 끓일 땐 치대 준다. 생미역으로 끓일 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뽀얀 국이 나오지만 말린 미역으로 할 땐 한 번쯤 더 손길을 거치는 게 맛있는 것 같다.
그동안 잘 삶아진 고깃국은 다른 냄비로 옮겨놓고, 냄비에 묻어있는 고깃기름에 자른 미역, 참기름, 마늘, 어간장을 적당히 넣고 잘 볶아준다. 미역과 마늘의 기운이 쭉 빠지고 미역에서 나온 물로 바닥이 촉촉해졌다 싶을 때, 옮겨놓은 고깃국을 넣어 팔팔 끓여준다.
팔팔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낮춰서 10~15분 정도 뽀얀 국이 될 때까지 끓여주면 속도 편하고 맛도 좋은 미역국이 완성된다.
미역국엔 쌀밥이 있어야하는데, 밥을 먹으려고 보니 남은 밥이 없다. 아뿔싸. 출장에, 야근에, 며칠 만에 먹는 집밥이라 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은 나는 천상 주부는 못될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찬장에 남은 오트밀을 꺼내 계란과 함께 풀어 레인지에 데운다. 급한 대로 오트밀 계란죽을 만들어 본다.
전자레인지에 오트밀 계란죽이 도는 동안 냉장고에서 밑반찬으로 만들어둔 멸치볶음을 꺼내고 밥상을 차린다.
뜨끈하고 구수하기도 한 미역국이 화가 났던 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 같다. 남편 생각만 해도 밉고 화가 났던 건 혹시 배고픔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이 미역국을 보고 나의 성난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간 남편이 미역국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간편하고, 더욱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이지 않은지가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당신의 취향을 위해 내가 그간 나 좋은 것도 참아주었으니, 당신도 날 위해 한번쯤은 내 심정을 보고 나의 뜻을 따라주길 바란다는 의미로 미역국을 끓였는데, 과연.. 그는 눈치를 챌런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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